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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24. 11:05

 

 

 

Bridal Shower을 위한 만찬

평소 내가 잘 먹는 것들로 준비했다.

1. 치커리 팽이버섯 훈제연어 돌돌말이 (소스는 따로 없음, 케이퍼로 마무리)

2. 호두, 가지, 아스파라거스, 파프리카, 마늘, 호박, 양상추 샐러드 (발사믹 소스)

3. 소고기 구이 (무슨 부위였는지는 까먹었다)

 

친구가 결혼했다. 어쩌다 사회를 보게됐다. 그녀의 남자친구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들은 결혼 소식을 알리더니 나에게 사회를 봐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여성이 사회를 보는 것, 자체가 매우 재미있게 느껴졌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그들은 다시 나에게 연락을 했다. 그 둘을 소개시켜준, 신랑의 친구와 함께 공동으로 사회를 보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역시 거절하지 않았다. 둘이 사회를 보는 것도 재밌고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황정민을 닮은 그와 사회를 봤다. 석가탄신일이 결혼식이기에, 우리는 사회를 보는 일을 '석가프로젝트'라 칭했다. 둘 다 너무 긴장을 해서 잘 봤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그냥 잘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누군가 결혼식에 '사회'의 비중을 높게 책정한다면 말리고 싶다.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예식장에서 주어진 대본을 잘 읽는 사람으로 골라, 식에 집중하게 하라 .

 

석가프로젝트의 주인공, 5월의 아름다운 신부, 그녀와 나는 초중고를 함께 졸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오래된 친구는 맞지만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진탕 취해본 적도 없고 집안 일로 울면서 통화를 해본적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같아 다툰 적도 없고 멀리 여행을 떠나본 적도 없다.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 친구는 학원에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회를 했고 그 친구는 여행을 다녔다. 졸업하고 여행을 했고 그 친구는 회사에 다녔다. 회사에 다니는 지금 그 친구는 결혼을 해 미국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인정하자면, 가장 가까운 친구는 맞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는 아니다. 둘다 친구를 많이 사귀는 편이 아니기도 하다. 외적인 것보단 내적인 것을 파고 드는 성향이고 가장 큰 특징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에게만 집중한다는 것(그러나 그녀는 결혼을 했고 나는 '좋지 않은' 사랑만 했다). 그러기에 둘이 친하면서도 친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우리는 왜 더 친해지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 속에 떠오르는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우리는 체육 실기고사를 앞두고 밤 9시에 운동장에서 만났다. 실기과목은 '자유투'였다. 난 이상하게 자유투를 잘했다. 나중에 대학가서도 자유투대회에서, 체대 아이들을 꺾고 1위를 한 적도 있다. 골대에 있는, 삼다수 광고의 삼다수 물병만 맞추면 농구공이 들어간다는 것을 요령으로 알고 있었다. 공을 올릴 때마다 '삼다~슛!'이라며 촐랑맞게 구호를 외쳤다. 그녀도 그게 재밌었는지 '삼다~슛!'을 외치며 연습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밌었는데. 우리는 더 친해질 수 있었는데.

 

말로는 '삼다수'였지만 서로의 상황은 흙탕물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각종 공모전에 시나 소설따위를 보내고 매일 매일 공모 결과만 기다리며 실망하는 상태였고(첫번째 상을 타기까지 20번 정도 떨어졌다), 그녀는 학구열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 학교에 오기 싫어했다. 다른 학교에 지원을 했지만 모두 떨어졌고 어머니께 이사를 우기기도 했다. 그러기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매 시험을 잘 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나: (백일장에서 자꾸 떨어지니까) 뭐든지, 타고 나야 하는 것 같아.

 

친구: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런게 어딨어. 노력하면 누구나 다 돼.

 

나: 아니야. 상위 10% 안에 들려면 타고나는 수밖에 없어.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 밑이야.

 

그리고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정문에서 헤어져, 그녀는 왼쪽으로 갔고 나는 오른쪽으로 갔다.

 

며칠이 지나고, 친구는 갑자기 나에게 '점심절교'를 선언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나와 친구는 친구들을 넓게 사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점심을 늘, 같이 먹었었다.

 

친구의 문자_ "너랑만 같이 점심먹으니까, 반에서 친구들이랑 사귀기가 어려워. 나 이제 반 친구들이랑 친해지려고. 점심도 같이 먹고 집에도 같이 가려고."

 

그리고 멀어졌다. 

 

주말이나 방학에도 친구는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친구, 좋은 학군에 다니는 친구와 학원에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속 멀어졌다. 대학에 붙어도 축하해달라고 말도 못했을 정도로. 학교에 현수막이 붙자 문자가 하나 왔을 뿐.

 

친구의 문자_ "왜 말 안했어. 축하해."

 

친구는 재수를 시작했다. 좋은 대학에 붙었지만 더 좋은 곳에 가겠다고 재수를 시작했고, 지겨웠는지 5월에 수시 1학기로 성적보다 조금 못미치는 대학에 합격했다.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건, 24살이 되어서였다. 그나마 내가 외국으로 가면서 중학교 때 친구들과 연락하고 얼굴보고 밥을먹고 이야기를하고 그뿐.  우리 둘이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난 외국에서 돌아왔고 다시 친구들과 연락하고 얼굴보고 밥을먹고 이야기를했다. 우리 둘은 지구가 자전을 하듯 규칙적으로 그러나 느리게 '친한 사이'로 되돌아왔다. 내게 사회를 부탁한 것이 어떤 또 다른 계기, 전환점으로서 의미가 있나..? 모르겠다.

 

이뿐이다. 청춘을 그린 순정만화에 꼭 등장하는 뻔하디 뻔한 감정.

 

건조한 나의 기억을 어떻게 끝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봄이 후다닥 지나가고 뜨거운 여름을 알리는 공격이 시작됐다. 밖에 있는 것만으로도 덥고 짜증난다. 무더위기 곧 지나가고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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