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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4. 16:37




'시아와세(しあわせ)'는 우리 말로 '행복'이란 뜻의 일본어다. 


건대에 이 단어를 빌린 이자카야가 있다. 적어도 10년 정도된 작은 가게로, 일본인이 직접 주방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주말에 자리가 없어 돌아가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홍대에 2호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어지고 돈부리 집으로 바뀌었더라. 


난 이곳의 오랜 단골이었다. 한국을 떠나면서, 그리고 귀국해서도 주거지를 건대에서 홍대로 옮기면서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자양동에 살 때 이곳은 내가 가는 건대의 몇 안되는 술집이었다. 


오코노미야끼도 참 맛있지만, 나는 이곳의 두부샐러드를 좋아했다. 

땅콩소스도 적당히 느끼했고, 특히 솔솔 뿌려주는 두부 위의 김이 너무 좋았다. 


어제는 그 생각이 나서, 두부 샐러드를 만들었다. 그런데 김을 너무 많이 뿌린 듯하다. 땅콩소스도 별로였다. 

작은 마트에, 땅콩소스라곤 오뚜기 것이 전부였다. 오뚜기 땅콩소스는 너무 퍽퍽했다. 



시아와세는 특히, 남자들하고 많이 갔다. 음식이 맛있으니까, 데이트 장소로 적합했었던 듯. 

그 중 몇가지 이야기를 기록해볼까 한다. 



J군과 이곳에서 술을 먹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은 적이 있다. 


늘 바빴던 J군. 그리고 그보다 더 바빴던 나. 그는 나 몰래 편입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그는 힘든 내색을 팍팍하며 학원에 다녔다. 나는 그가 학원에 다닌다는 것만 알고 뭘 공부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반 년이나 넘게 학원에 다녔는데, 한 번도 물어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편입학원에 다닌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내가 먼저 눈치채주길 원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해주길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이곳으로 부르더니 합격통지서를 보여줬다. 


너무 미안하고, 그가 대견스러워서 많이 울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내며 고등학교 때 연인이 된 우리는 서로의 성장과정을 봐왔던 터라, 서로의 고통도 즐거움도 배가 되어 나눌 수 있었던 존재였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했다. 



O씨에게 무릎을 꿇은 일본 종업원. 


타고난 술꾼이었다, 이 사람은. 주도의 반절을 이 사람에게 배웠다고나 할까. 

어쨌든, 우리 둘이 이 술집에 가면 '간바레 오또상'이 두 팩은 기본이었다. 그걸 다 먹고도 입가심한다며 아사히까지 털어넘겼으니 휴. 생각만으로도 취기가 몰려온다. 


하루는 너무나 술이 먹기 싫어, 화장실에 가면서 종업원에게 말했다. 저 분이 술을 시키시면, 취했다고 그만 드시라고 하라고. 우리의 주량을 아는 종업원은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O씨는 성품이 온화한 편이라, 종업원이 술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부탁을 종업원에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무슨 말로 꼬셨는지, 그 종업원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새 정종 한 병을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있더라. 그리고 한 잔 따라주고 있더라. 


세상에. 



밴드부 보컬 X군. 


세상에, 이 아이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을 못 외우는 편이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기억나지 않을 수가 있지. 


암튼, 그 아이의 첫사랑은 나였다. 


우리학교 밴드부 보컬이었는데, 나도 이 아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앞서 말한 J군에게 확 끌렸기에. 아마 J군이 아니었다면 이 친구랑 사귀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나는건, 나에게 Mr.Big을 가르쳐줬다는 것. 하루는 <To be with you>를 들려줬는데, 보컬의 목소리가 당시 내가 너무나 좋아하던, Westlife의 마크와 조금 비슷하더라. 그래서 Westlife의 앨범에 이 곡의 리메이크가 나올 것 같다는, 예언을 했었다. Westlife가 워낙 명곡을 많이 리메이크 하기도 하니까. 


그런데 대박. 진짜로 다음 앨범에 <To be with you>가 실려, 심장이 찌릿찌릿했다. 


내가 J군과 사귄다는 소문이 학교에 파다하게 퍼지면서, 이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시아와세의 단골이라고 하더라!


얼마나 단골이냐면, 그 집 사장님 돌잔치에서, 자기가 축가를 불러준 적도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 


아, 이 친구와 관련된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밴드 공연을 하는데, 그 친구가 나를 위해 Extreme의 <More than words>를 불렀다. 

물론 그 자리에서 나에게 부른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 노래를 너무나 좋아했고 꼭 불러달란 말을 했기에 셋 리스트에 포함시킨 거였다. 


그 친구가 무대 아래의 나를 보며, 노래를 부르는데 내 옆에 엄청 공주병 친구가 있었다. 내쪽을 보니까, 자기를 보는 거라고 착각하더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방금 들었어? '세희, 아이 러브 유'라고 하잖아.' 나한테 고백하는 건가봐. 

세상에, 노래 첫구절. Say I love you. 하필 그 친구 이름이 '세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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