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다란의 <어른스러운 철구>
미티의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
철구는 '어른의 뇌'를 가진 아이고, 남기한은 어른이 '과거로 돌아간' 아이다.
과거를 후회하고, 그 후회에서 스트레스를 얻는 건 인간만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누구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그 선택을 하지 않고, 그 말을 하지 않았을 때 또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예언자로서 조언을 해주는 일을 상상한다.
...
오늘 아침 문득, 나도 애어른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걸스카웃이었다. 3월에는 모두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데 그 연습을 한다는 핑계로 내내 강당 구석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사고가 났다. 방송부에 있는 6학년 남자와 내가 시비가 붙었는데
그 새끼가 무릎으로 내 얼굴을 찍었다. 상처는 없었다. 다만 앞니의 끝이 부스러졌다. 입 안에 깔깔한 가루가 느껴졌다.
담임선생님은 강당 내 따로 마련된 교무실에 있었다. 체육선생님이어서, 바로 이를 수 있었다.
선생님은 매우 화가 나, 방송부 6학년 남학생을 야단쳤다.
그리고 부모님과 치과에 가보고, 남학생 부모님을 찾아뵈라고 했다.
아이들의 일은 어른들의 일로 퍼졌다.
학교의 일은 가정의 일로 넘어갔다.
남학생은 엄마한테 혼나는건 죽어도 싫었는지, 아니면 나한테 진짜 미안했는지 무릎꿇고 울었다.
내 얼굴을 찍은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나는 상처는 없었고, 고통도 없었고 다만 입이 깔깔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부모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를 용서(?)하기로 하고, 집에 알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에겐 잘 해결됐다고 했다.
오늘 아침 이 일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아이의 머리로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라고 했다.
나의 일에 관심이 많은 부모가 있고, 부모에게 모든 관심과 집중을 받고 싶긴 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도 과거에서 온 어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기억을 못하고 있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나는 과거에서 왔다. 인생을 두 번사는 것이니, 행동에 침착하자. 선택은 고심하자. 말은 되도록 아끼자.
해리포터와 던킨도너츠
고등학교 때, <해리포터> 한 시리즈가 개봉했다. 집근처에 있던 영화관은 모두 매진이었고 그나마 가까운 코엑스 메가박스에 자리가 남아있었다.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친구의 동생은 지하철을 탔다.
주말 오전이었는데, 왠일인지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우리가 나란히 앉은 자리의 맞은편도 텅텅 비었다. 선반은 제외하고.
아무도 없는 자리 위 선반엔 던킨도너츠 상자가 있었다.
마치 우리에게 온 선물 같이. 어쩌면 누군가의 선물이 될 수 있겠지만 그가 급히 내리는 바람에 혼자 남게 된 도넛상자였다.
우리 셋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다들 말은 안했지만, 주인이 없는 것이니 당연히 '우리 것'이라 생각했다. 당신도 이 상황이었으면 가져왔으리라.
지하철이 다음역에 도착해 맞은 편 자리에 누가 앉기 전에,
이 생각을 찰나에 공유하고, 우리 셋은 그 자리로 건너 가 앉았다.
그리고 삼성역에 내리며, 자연스럽게 도넛상자를 집어 함께 내렸다.
해리포터와 던킨도너츠. 아주 좋았다.
혼자 남겨진 팝콘과 콜라
: 그러고보니 이 일도 극장에서 있었던 일이구나
강남역 메가박스에 연인과 어떤 영화를 보러 왔다. 마블 시리즈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허리가 아파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혼자 파스를 붙이고 나왔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바글바글 거리는 사람을 뚫고 영화관에 도착했는데, 역시 사람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을 모두 수용할 리 없는 극장 안 대기 테이블에 오래도록 기다려 자리를 잡았다.
원래 이것저것 구경을 할 생각이었지만, 허리가 아픈 덕에
어디 가지 못하고 극장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죽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 옆 테이블엔 커플이 와서 앉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싸웠다.
여자가 먼저 자리를 떴다.
남자가 자리를 떴다.
둘다 돌아오지 않았다.
한 입도 먹지 않은 콜라와 팝콘만 남았다....
다시 돌아오겠거니 했는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결국 둘은 오지 않았다.
그 자리는 계속 비워져 있었다. 팝콘과 콜라가 있으니 아무도 앉지 않았다.
콜라컵에서 흘러나온 물로 테이블엔 물이 고였다.
나와 연인은 할 일도 없어서, 그 테이블을 계속 응시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우리 영화가 시작하기 15분 전이 됐다.
나와 연인은 그 팝콘을 들고 극장에 왔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나왔을 때, 콜라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테이블엔 더욱 물이 고였다.